[김준면X도경수] 인형같아

면도 2016. 3. 1. 01:09 posted by Mata_

 

 

[김준면X도경수] 인형같아

w. Mata

 

 

 

 

 

 

 

 

 

 

 

“...인형 같다.”

 

 

 

저도 모르게 입 밖으로 나와 버린 말이었다. 그저 생각만 할, 의도치 않은 그 말에 순간 당황해 입을 틀어막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다행히 입 밖으로 나온 그 작은 목소리를 들은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 같았다. 갑자기 빨라진 심장 박동 때문인지 열이 올라버린 양쪽 귀를 상대적으로 시원한 손으로 꾹꾹 누르며 다시 조심스럽게 고개를 돌렸다.

 

3이라고는 하지만 아직은 학기 초였다. 점심시간의 교실에는 남아있는 학생들보다 운동장으로 나간 학생의 수가 더 많았다. 그 말은 교실에 남아있는 학생이 한손으로 꼽을 만큼이라는 말과 같았다. 그래서 교실은 조용했다.

 

운동장 쪽으로 나있는 창을 통해 봄날의 따뜻한 햇살이 포근하게 내리고 있었다. 열어놓은 창을 통해 들어온 바람에 때가 끼지 않은 하얀 커튼이 살랑살랑 흔들린다.

 

창가 바로 옆자리에 앉아있는 그 모습이 어쩐지 눈에 계속 박혀 들어온다. 창을 통해 들어오는 빛이 설레게 가슴에 와 닿는다. 몸에 닿는 공기가 따뜻하다. 단정한 옆선과 깔끔한 교복. 샤프를 잡은 하얀 손. 그의 모든 것이 준면의 시선을 잡아끈다.

 

평범하기 짝이 없던 세상이 어느 순간, 갑자기, 이상하게도 아름다워진다는 흔한 사랑 노래 가사는 거짓이 아니었나보다. 준면은 이상한 기분에 연신 눈을 비빈다. 그래도 시야에 담기는 세상이 이렇게나 아름다워 보인다.

 

때 이른, 아니 어쩌면 조금 늦은 것일 수도 있는 사춘기를 겪고 있는 준면에게는 세상, 특히나 학교는 무채색의 재미없는 곳이었다. 이미 일찌감치 진로가 정해져 다른 동급생들처럼 불확실한 미래 때문에 공부에 열중할 필요도 없으니 무력감은 더하면 더 했지 덜하진 않았다.

 

그랬던 준면의 재미없는 세상에 색이 덧칠해진다. 빨간색부터 보라색까지. 무지갯빛으로.

 

 

 

 

 

◇ ◆ ◇

 

 

 

 

 

준면의 무채색 세상에 색을 덧칠해준 사람은, 참 우습게도 준면과 1, 2학년- 그리고 지금 3학년 때까지 같은 반이라는 도경수였다. 반장을 한 번도 놓친 적이 없는 준면은 괜히 멋쩍어졌다.

 

같은 반 학생들에게 관심이 없었고 지금도 경수 외에는 관심이 없는 준면이 경수에 대해서 물어보는 것을 준면의 친구인 백현이 이상하게 생각했지만 곧 준면의 흔한 변덕이라고 생각하고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을 뿐이었다.

 

준면은 거의 모든 시간을 경수를 바라보고 관찰하는 일에 시간을 할애하였다. 썩 괜찮은 핑계를 만들어 내어 경수가 앉아있는 분단의 제일 뒷자리에 앉은 아이와 자리를 바꾸고 나서는 경경수를 더욱 더 편하게 관찰할 수 있었다. 언제든 준면의 시선은 경수를 향하고 있었다. 이게 어떤 감정인지 스스로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눈이 경수를 따라가는 것뿐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처음 경수의 모습이 눈에 박혀 들어왔을 때처럼 준면은 경수가 인형 같다고 계속 생각하고 있었다. 생김새뿐만이 아니라 행동이며 사소한 분위기까지 그 모든 것이. 경수는 인형 같은 모습이었다. 말수도 적고 어울리는 친구들조차 조용했다. 세상에 무심한 준면과 비슷하게 반에서 겉도는 것은 확실했으나 또 다르게 존재감이 적었다. 그런 경수를 주위에 무심한 준면이 입학하고 3년이 되어서야 알게 된 것도 당연한 일일지도 몰랐다.

 

평범하지만 평범하지 않았던 그 날 이후, 준면이 경수를 계속 지켜보고 있는 것 외에는 둘 사이의 변화가 없었다. 경수는 준면이 자신을 계속 보고 있다고 눈치를 채지 못한 건지 아니면 알고서도 무시하는 건지 알 수는 없었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있었다.

 

김준면에게 도경수가 없는 곳은 더 이상 의미 있는 곳이 아니었다.

 

 

 

 

 

◇ ◆ ◇

 

 

 

 

 

처음과 같음을 준면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있었다. 그러나 점점 같음을 이상하게 여기기 시작했다. 자신이 그렇게 집요할 정도로 경수를 계속 바라보고 쫓고 있는데 경수는 자신을 눈치 채주지 않는다. 어쩐지 그 사실 때문에 준면은 마음이 불편해졌다.

 

어느새 봄은 다 지나가고 여름이 찾아오고 있었다. 운동장 쪽은 물론이거니와 복도 쪽의 창문의 모든 문이 열러 있더라도 바람이 불지 않아서 교실 안에는 더운 공기가 무겁게 머물러 있었다. 준면은 나른하게 눈을 몇 번 깜박여 본다.

 

갑자기 찾아온 이른 더위에 교실 뒤편 사물함 위에는 씻어놓은 선풍기 부품들이 말려지고 있었다. 아마 다음 쉬는 시간이 되면 성미 급한 몇몇 아이들에 의해 천장에 달린 선풍기 네 대가 올해의 일을 시작할 것이었다.

 

준면은 아까 화장실에서 눈을 내리깔고 꼼꼼하게 선풍기에 쌓여있던 먼지를 물로 씻어내는 경수의 옆모습을 떠올려보았다. 주번을 같이 하면서도 경수와 준면 사이에 오고간 대화는 없었다. 경수가 일어나면 준면이 따라 일어나 일을 같이 했다. 원래는 주번의 일이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반장인 준면의 일이 된 출석부를 가져오는 것은 경수가 준면을 말없이 따라와 나름 같이 하는 것이 되어 있었다. 번갈아 가며 쓰고 있는 학급일지의 까만 가죽 표지를 내려다보던 준면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창문을 통해 더운 바람이 들어온다. 탄식이 섞인 웅성거림에 수업을 진행하던 교사가 손에 들고 있던 가느다란 회초리로 교탁을 몇 번 두드린다.

 

바쁘게 필기를 하는 경수의 손에 방황하던 시선을 고정해본다, 샤프를 쥔 손에 햇빛이 반사되어 더욱 하얗게 빛이 난다. 짧게 잘라 놓아 아파 보이기까지 하는 분홍색 손톱이 눈길을 끈다. 어쩜 저렇게 모든 것이 만들어진 인형 같아 보이게 하는지 궁금하기까지 한다.

 

호명에 경수가 일어나 앞으로 나간다. 분필을 들고 책에 필기를 하던 손으로 칠판에 수학 문제를 풀어나간다. 칠판을 차곡차곡 채워나가는 글씨체가 어쩐지 더 선명하게 보인다.

 

손에 턱을 괴고 그런 경수의 단정한 뒷모습을 지켜보는 준면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 ◆ ◇

 

 

 

 

 

주번이 2주 밖에 되지 않는다니, 조금은 짜증이 난 상태였다. 마지막으로 교실의 문단속을 하는 준면이 자신도 모르게 작게 한숨을 쉬었다. 몸을 돌리니 뒤에 가만히 서 있던 경수는 이미 복도 저 만큼 걸어가고 있었다.

 

 

 

도경수.”

 

 

 

준면의 부름에 경수가 뒤를 돌아본다. 정말 처음으로 둘의 시선이 마주했다.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지만 준면은 어쩐지 경수의 대답을 들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러나 굳게 다물어진 저 입술이 움직여 제 이름을 불러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 내 이름 알아?”

“...김준면이잖아.”

 

 

 

침묵 끝에 나온 황당한 질문이었지만 경수는 나직하게 준면의 이름을 입 밖에 내었다. 하긴 이름을 모를 리가 없었다. 3년이나 같은 반이었고, 준면은 반장이었고, 또 학교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하기도 했다. , 이렇게 2주나 주번을 같이 했었다. 준면은 자신의 멍청한 질문을 자책하며 입술을 깨물었다.

 

둘 사이에 어색한 침묵이 오고갔다. 막상 경수를 불러 세워 놓고는 자신의 이름을 물어보는 것 외에 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더 할 말 없어?”

 

 

 

아무런 대답이 없는 준면의 모습에 경수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 한숨 소리에 준면은 다시 말문이 막혔다. 어쩐지 부끄러운 느낌에 준면은 뒷목을 긁적였다.

 

 

 

“-인형 같아.”

 

 

 

뇌를 거치지 않고 튀어나온 그 말에 준면은 귀에 피가 몰리는 기분에 시선을 바닥으로 내렸다. 그러다가 다시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었다.

 

 

 

?”

너 인형 같다고.”

내가?”

 

 

 

경수의 되물음에 준면이 가만히 눈만 깜빡였다. 나열되지 않은 단어들이 어지럽게 머릿속을 부유하면서 떠다니는 기분이었다.

 

그때였다. 항상 무표정을 유지하던 경수의 얼굴에 웃음이 떠오른 것은. 처음 보는 경수의 웃음에 준면은 멍하니 서있을 수밖에 없었다. 독특한 모양을 그려내는 경수의 입모양이 어쩐지 경수의 모습을 더욱 더 인형 같아 보이게 했다.

 

 

 

“...안 가?”

?”

집에 안 갈 거냐고. 갈 거면 지금 같이 가고.”

 

 

 

잘 들리지 않는 작은 경수의 목소리에 준면이 웃었다. 그런 준면을 바라보던 경수가 몸을 돌렸다. 준면은 바삐 걸음을 옮겨 먼저 걸어가기 시작한 경수의 뒤를 따라 걸었다. 경수를 따라 잡은 준면이 용기 내어 손을 뻗었다.

 

경수의 손에 잠깐 닿았다가 떨어진 손끝이 어쩐지 화끈거리는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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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됴른 100제에 참여했던 글 살짝 수정해왔습니다.. 에헿